2013년을 돌아보며

참 바삐 보낸 2013년이었습니다. 다큐 ‘자연농’이 처음 시작할 때부터 늘 그래온 것처럼, 지난 한 해 역시도 고마운 인연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으며 이 프로젝트를 무사히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올 한해 저희 다큐 ‘자연농’ 팀은 일본과 한국, 미국 곳곳에서 자연농 농장을 찾고 농부들을 인터뷰하며 영상과 사진을 담았습니다. 사진들과 함께 저희의 지나온 길을 정리해보았습니다.

1월-3월 | 서울, 새로운 만남들

새해 첫날, 영하 17도의 얼어붙은 날씨 속에서 첫 일출을 보러 한강공원에 갔습니다. 흐린 날씨 덕분에 해는 보지 못했지만, 대신 빛나는 눈송이들을 보며 즐겁게 걸었습니다. 삼각대를 세워놓고서 담은 이 기념 사진 속에 그 춥지만 아름다웠던 아침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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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은 농부들의 ‘겨울방학’입니다. 지난 해를 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며 숨을 고르는 시기입니다. 올 1월 저희는 홍천과 연천의 두 자연농 농부와 함께 특별한 방학을 보냈습니다. 바로 다큐 ‘자연농’이 처음 시작된 곳, 홍천의 최성현님 댁에 연천 해땅물 농장의 홍려석님과 함께 찾아뵙게 된 것입니다.

홍려석님은 8년 전, 최성현님이 옮기신 책을 보고 자연농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고 하셨는데요, 그래서인지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마치 오랜 인연을 만난 듯, 반갑고 또 정답게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추운 지방에 적합한 벼 종자를 선물로 가져와서 건네드리기도 했고요. 다큐 ‘자연농’을 통해 이어진, 두 자연농 농부분들의 교류를 곁에서 지켜보며 무척 마음이 든든하고 기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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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꾸준히 작업할 새 공간을 찾던 중, 막 ‘코워킹 커뮤니티’ 서비스를 시작한 스페이스 노아를 알게 되었습니다. 공간을 공유할뿐만 아니라, 서로 도우며 함께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는 이 곳을 통해 다큐 ‘자연농’은 더 힘차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저희는 작은 사진 전시회 ‘People, Nature, City’ 를 열었고, 자연농 농부 홍려석님을 초청하여 ‘자연농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 강연을 주최했습니다. 또한 슈마허의 책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읽는 독서모임을 진행하며,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생각을 공유해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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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 서울, ‘봄 사세요’ 꽃노점상

3월의 주말, 삼청동 거리에서 ‘꽃 노점상‘을 열었습니다. 작은 꽃다발과 저희의 사진 작품들을 판매하며 다큐 제작비를 모아보자는 취지의 작은 이벤트였습니다.  동시에 부담없이 구입할 수 있는 소박한 꽃을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전하고자 하는 일종의 캠페인이기도 했습니다. 휴일을 앞둔 토요일 낮, 남대문 시장의 꽃도매상에서는 평소보다 훨씬 더 저렴한 값으로 다양한 꽃을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문지로 감싸 만든 작은 꽃다발은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하고 잔잔한 매력이 있어 무척 인기가 좋았답니다. 거리에 봄을 퍼뜨리며, 사람들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며, 저희도 한껏 행복해질 수 있었습니다.

4월-7월| 일본, 자연농 농장 취재

4월 한 달 동안 패트릭은 일본 곳곳의 자연농 농장을 찾았습니다. 1주일에서 열흘 남짓, 각 농장에서 머물며 자연농을 직접 체험하고, 농부들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작년 가와구치 요시카즈 님의 인터뷰 때에도 동행해주었던 카오리 츠지 님이 이번에도 통역을 도와주셨고, 시코쿠에 있는 오키츠 님의 자연농 농장을 소개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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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ing Osamu Yoshino at his natural agriculture farm in Ch

에리 도메님 역시 교토, 오카야마, 도쿄의 여러 자연농 농장 취재에 동행하며 통역과 진행에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돌이켜보면 일본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저희가, 일본에 몇달 간 머물며 열 명도 넘는 농부들과 원활히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는 게 참 놀랍기도 합니다. ‘사람과 자연, 모두에게 이로운’ 자연농의 취지에 깊이 공감하는 분들이었기에, 저희의 프로젝트에도 선뜻 마음을 내어주셨던 것 같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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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코쿠 섬 도쿠시마 지역에서 자연농 모임을 꾸려가고 계신 오키츠 님의 밭에서, 매달 정기적으로 열리는 ‘자연농 모임’ 현장입니다. 이 지역의 자연농 농부들, 자연농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습니다. 이토록 자연농과 관련한 지역 커뮤니티가 활발히 운영되고 있는 모습을 보며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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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이 재학 중인 Edinburgh College of Art 의 자매결연 대학인 Aichi University of the Arts. 나고야에 위치한 이 대학과의 인연으로 이 지역 농부인 마츠자와 님의 농장에 방문했을 때의 사진입니다.

6월-8월 | 일본 메기지마, ‘사람과 자연’ 프로젝트

6월부터는 Aichi University of the Arts 을 통해 세토우치 국제예술제의 일환으로 일본 시코쿠 섬, 세토우치 해에 있는 메기지마에 머물며 ‘사람과 자연’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는 스페이스 노아에서 만난 요한과 송이가 함께해주었습니다. 인구 100명 남짓의 작은 섬 메기지마에서 보낸 두 달,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저희들에게 무척 독특하고 또 소중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하며, 동시에 저희 다큐 프로젝트에 대한 생각도 좀 더 깊숙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 더욱 의미있었습니다.

 

Song Yi, Suhee, Patrick, and Johann with sweet and juicy Megijima corn. donated by the locals.

Song Yi, Suhee, Patrick, and Johann with sweet and juicy Megijima corn. donated by the locals.

An old settlement, many un-used homes are scattered among the small farm plots near the village center. (2013, P.M. Lydon / FinalStraw.org | CC BY-SA)

 

메기지마의 주민들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각자 간직해오고 있는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그동안 다큐 ‘자연농’ 작업을 통해서도 많은 자연농 농부들을 만나 비슷한 주제로 인터뷰를 진행해왔지만, 이번 메기지마 프로젝트에서는 좀 더 사람, 가족,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들을 깊이 있게 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뜻깊었습니다.

메기지마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인 나카무라 님은 섬에서 가장 소중한 장소로 자신의 논을 골랐습니다. 매년 직접 키워 수확한 쌀을 거둬 전국 곳곳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내고 있다고,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같은 논에서 난 쌀을 먹으며 가족이 끈끈하게 이어져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어 참 뿌듯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평생 흙을 만지며 일해오신 그분의 거친 손을 보며 저희는 마음 속 깊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The rice farm of Masakatsu Nakamura. The only one left on the island (2013, P.M. Lydon / FinalStraw.org | CC BY-SA)

나카무라 님의 논, 파릇파릇한 벼가 자라고 있습니다.

 

Our Illustration/Animation intern, Heeyoung, as Momotaro.

Our Illustration/Animation intern, Heeyoung, as Momotaro.

메기지마에서는 ‘사람과 자연’ 프로젝트와 함께 다큐 ‘자연농’의 편집 준비작업, 추가 취재도 함께 이뤄졌는데요, 7월 말부터는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박희영 님이 합류했습니다. 다큐에 들어갈 애니메이션에 대한 논의 뿐만 아니라, 저희 다큐의 방향과 기본 줄거리, 다룰 이야깃거리들 등등 중요한 틀을 갖추는 작업을 함께하며 단단한 팀워크를 쌓았습니다.

 

메기지마에 머물던 동안, 저희를 가족처럼 대해 준 메기지마 사람들 덕분에 마치 외갓집에 온 것처럼 푸근한 기분으로 지낼 수 있었습니다. 대대로 이어져온 메기지마의 마을축제 ‘마쯔리’에도 참가하며 더 깊은 정을 쌓아나갔습니다. 동시에 이 소중한 전통문화가 점차 사그라들고 있는 점을 지켜보며 안타까워하기도 했습니다. 축제를 이어나갈 젊은 층이 없어서, 올해를 마지막으로 ‘메기지마 마쯔리’는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지요.

 

Megijima Matsuri (2013, FinalStraw.org)

어떻게 다시 젊은 인구를 보충하고, 섬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주고받았고, 그런 논의를 바탕으로 메기지마 주민 및 세토우치 페스티벌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자연농에 관한 강의를 마련했습니다. 시코쿠와 나고야 지역의 자연농 농부들을 초청하여 어떻게 자연농이 사람과 자연, 공동체 모두에게 이로운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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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크고 작은 프로젝트와 이벤트 외에도, 메기지마에 ‘살며’ 온갖 소소한 추억거리들이 가득 쌓였습니다. 메기지마의 최연소 주민, 아카리와 히나타 남매는 날마다 저희의 작업공간에 놀러와서 함께 뛰어놀곤 했습니다. 옆집의 ‘메기마마’, 저희의 엄마였던 하시모토 댁 아주머니는 친자식처럼 저희를 참 예뻐해주셨습니다. 직접 키운 채소들로 만든 특선요리를 수시로 가져다주셨던 요코야마 아주머니, ‘친구가 되어서 정말 기쁘다’며 손을 꼭 붙잡아주셨던 야마모토 아주머니, 함빡 정이 든 이웃들이 가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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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자연’을 주제로 모은 인터뷰 영상과 사진은 터치스크린 어플리케이션 프로그램에 담겼습니다. 그리고 이 전시는 세토우치 국제 예술제의 전시공간인 ‘메기 하우스’에 전시되어 일반 관람객들에게 공개되었고, 이후 8월 말 아이치 국제 예술제가 열리는 나고야로 자리를 옮겨 연장 전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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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과정들은 수많은 일본인 자원활동가들, 그리고 멀리 미국에서 일본까지 온 친구들의 도움, 저희 팀 구성원들끼리의 단단한 팀워크에 힘입어 원활히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마음 깊이 고마움을 전합니다.

 

 

7월 | 일본 야마구치, ‘The Eco Art Village Project’

7월 중에는 일본 야마구치 시에 있는 N3 Art Lab 에서 열리는 “Eco Art Village Project” 에 초청받았습니다. 그동안 작업해온 다큐 ‘자연농’ 인터뷰 영상 전시와 함께 설치- 관람객 참여 작품으로 ‘무료 채소 키트(Free Food Kit)‘를 마련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식품은 당연히 ‘구입해야하는’ 상품이 되어버렸지만, 작은 노력으로도 직접 키워서 무료로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또 그런 작은 노력과 관심을 통해 우리의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길 바란다는 취지이기도 하고요. 이 설치 작품을 위해 100장이 넘는 봉투를 비치해두었는데, 전시 중반 즈음 봉투가 모두 떨어졌다며 더 보내달라는 큐레이터의 요청을 받아 부지런히 더 만들며 내심 뿌듯해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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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 미국 캘리포니아, 나무 자연농 농장과 레스토랑 취재

학기 시작 전 잠시 미국에 머물던 동안, 패트릭은 샌프란시스코의 자연농 농부 Kristyn Leach, 그리고 Namu Gaji 레스토랑의 쉐프 Dennis Lee를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자연농 농장에서 키운 신선한 채소가 곧바로 레스토랑에 공급되는 이상적인 협력관계를 살펴보며, 훌륭한 식사도 함께 맛보았다고 합니다. 이 인터뷰 내용은 곧 발행될 뉴스레터를 통해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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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 11월 | 영국 에딘버러, ‘Food, Art, and Nature’

10월부터는 영국 에딘버러에서 쭉 머물며 다큐 편집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패트릭이 재학 중인 에딘버러 대학에서 ‘Food, Art, and Nature’를 주제로 한 패널 토론을 열었습니다. 각각 학계와 시민운동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들인 Emily Brady(Edinburgh University), Mike Small (Fife Diet), Ben Twist 세 분과 함께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나눌 수 있었던 소중한 자리였습니다.

The Final Straw exhibition, November 2013 at TENT Gallery, Edinburgh.

패널토론과 함께 마련한 갤러리 전시에서는 다큐 ‘자연농’이 그동안 담아온 자연농의 철학, 각 농부들의 이야기들을 한눈에 훑어볼 수 있도록 한쪽 벽면에 사진들과 함께 모으고 실로 연결해두었습니다.

 

Final Straw Panel Discussion at Edinburgh College of Art with Emily Brady, Mike Small, Ben Twist and Chris Fremantle.

 

Suhee and Yanli at the Free Food Kit making table

또 다른 한 쪽 벽면에서는 좀 더 보강된 ‘무료 음식 키트’를 펼쳤습니다. 이 캠페인을 통해 1,600인분의 채소 씨앗을 에딘버러 곳곳에 퍼뜨릴 수 있었습니다. 채소 새싹과 함께 자연에 대한 관심과 생각들이 함께 무럭무럭 자라나길 바랐습니다.

 

11월 – 12월| 영국 에딘버러, 다큐 편집 작업

분주한 한 해를 보내고 저희는 이곳 에딘버러에서 차분히 연말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 미국과 영국, 수 차례의 강연과 전시회, 각종 이벤트와 프로젝트 진행, 1년 내내 빼곡한 일정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도움 속에서 순조롭게 진행해올 수 있었습니다. 이 경험들을 거쳐오며 다큐 ‘자연농’도 보다 단단한 발판을 다질 수 있었고, 저희 역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익히며 튼튼하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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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는 오랜 시간 이어온 다큐멘터리 제작을 순조롭게 마무리한 후, 영화를 통해 세계 곳곳에 ‘자연농’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또한 올해 펼쳐온 여러 활동들처럼, 더 많은 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함께 상호작용을 이뤄가고자 합니다. 자연농의 씨앗이 곳곳에서 싹을 틔우고 뿌리내리며 힘차게 자라나길 꿈꾸고 있습니다.

늘 응원해주시고 관심을 갖고 지켜봐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가오는 2014년, 더욱 더 열심히 다큐 ‘자연농’을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새해에도 꾸준한 관심과 든든한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패트릭 라이든 & 강수희 드림

FinalStraw.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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