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는 2014년

오랜만에 다시 돌아온 서울에서, 뒤늦은 작년 한 해의 기록을 모아 전합니다. 2011년 가을 처음 시작했으니, 벌써 3년 넘는 시간이 훌쩍 흘렀습니다. 참 느린 걸음으로 지나온 긴 길이었습니다. 그동안 쭉 그래온 것처럼, 2014년 역시도 곳곳에서 크고 작은 도움과, 응원과, 마음을 한껏 받아 안으며 씩씩하게 그 길들을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거의 완성을 코앞에 둔 다큐 ‘자연농’, 새해에는 더욱 신나고 흥미진진한 일들이 많이 생겨날 것 같아 두근두근 기대가 됩니다. 쭉 지켜봐주신, 함께 해오신 많은 분들께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겨울

A snow covered farm at dusk in Hongcheon, South Korea (P.M. Lydon, FinalStraw | CC BY-SA)

A snow covered farm at dusk in Hongcheon, South Korea (P.M. Lydon, FinalStraw | CC BY-SA)

번역 작업과 이야기틀 갖추기 –열 명도 넘는 세계 곳곳의 자원활동가 분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결코 마칠 수 없었을 거대한 작업이었습니다. 우선 일본어와 한국어, 영어로 진행된 수십 개의 인터뷰들을 모두 영어, 한국어 두 기본 언어로 번역을 마쳐야 했습니다. 그런 다음 저와 패트릭은 영어 번역본을 기본으로 꾸준히 편집 작업을 이어갔지요. 이와 같은 번역과 편집 과정에만 몇 달이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때로는 같은 인터뷰를 서너 차례 거듭 번역해가며 가장 정확한 내용을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모인 전체 인터뷰의 분량은 8만 단어가 넘을 만큼 방대했습니다. 이 내용을 추리고 골라내어 이야기의 틀을 갖추는데 또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전체 원고를 프린트한 다음, 중요한 내용을 골라 자르고, 그걸 모아 벽에 붙여가며 전체적인 형태를 잡아나갔지요. 고된 작업이었지만 동시에 무척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The Final Straw exhibition, November 2013 at TENT Gallery, Edinburgh.

The Final Straw exhibition, November 2013 at TENT Gallery, Edinburgh.

에딘버러 Tent Gallery 에서 열렸던 다큐 ‘자연농’ 전시에서 이와 같은 편집 작업의 모습을 벽면에 그대로 재현하여 관객분들과 공유하기도 했지요. 그리고 이 전시 이후 본격적인 편집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겨울의 에딘버러는 오후 3시 반 쯤이면 금세 어두컴컴해지곤 했던 터라, 온종일 집안에만 콕 틀어박혀 꾸준히 작업에 집중하기에 아주 알맞은 환경이었답니다. 또한 매주 농부의 시장이 두 차례 열리는 등, 매우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던 에딘버러의 로컬푸드를 통해 먹을거리의 중요성을 새삼 깊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Holyrood Park in Edinburgh (P.M. Lydon, FinalStraw.org | CC BY-SA)

Holyrood Park in Edinburgh (P.M. Lydon, FinalStraw.org | CC BY-SA)

본격적인 영상 편집 — 2014년 초, 텍스트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틀이 마련되면서, 본격적으로 영상 편집을 시작했습니다. 패트릭은 영어 인터뷰를, 저는 한국어 인터뷰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었지만, 저희 모두 일본어에는 까막눈이라는는, 그리고 전체 인터뷰 중 일본어 인터뷰의 비중이 절반이 넘는다는 중요한 난관이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구글 번역기와 전자사전을 적극 활용해가며, 아주 정확하지는 않지만 얼추 비슷하게 영상을 자르고 붙여가며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는 동안 점점 날이 길어지고, 조금씩 날씨는 따뜻해졌습니다. 또한 2013년 여름부터 쭉 함께해오고 있는 애니메이션 인턴 박희영님이 에딘버러로 와서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 작업을 시작했고, 틈틈이 시간을 내어 모두 함께 ‘자연의 날’을 보내며 눈부신 에딘버러의 봄을 만끽했습니다.

Edinburgh Nature Mornings at Holyrood Park (photo: FinalStraw.org | CC BY-SA)

Edinburgh Nature Mornings at Holyrood Park (photo: FinalStraw.org | CC BY-SA)

자연과 함께하는 날 – ‘자연의 일부인 우리 인간은, 일부러라도 꾸준히 시간을 내어 자연을 느끼고 그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 인터뷰 중 가와구치 요시카즈 님이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꾸준히 그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자, 매주 ‘자연과 함께 하는 날‘ 모임을 이어갔습니다. 저희 셋뿐만 아니라 여러 친구들을 초대해서 매주 소박한 나들이, 소풍을 나섰습니다. 모든 전자기기들에서 벗어나 마음껏 자연을 누리며 보냈던 그 기억들 덕분에, 에딘버러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가장 즐겨찾았던 곳은 ‘Arthur’s Seat’로 유명한 ‘홀리루드 공원’입니다. 늘 관광객들로 붐비는 그 유명한 꼭대기에는 가보지 않았지만, 그대신 너른 공원 곳곳에 숨겨진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들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여름

Summer at the natural farm in Hongcheon (P.M. Lydon, FinalStraw.org | CC BY-SA)

Summer at the natural farm in Hongcheon (P.M. Lydon, FinalStraw.org | CC BY-SA)

첫번째 임시 상영회 — 1차 편집이 전체적으로 마무리된 직후 열린 오픈 시사회와 상영회에서는 에딘버러에서 지내는 동안 가까이 지낸 학교의 친구들, 교수님들, 예술가와 활동가 등등 많은 분들이 함께했습니다. 그동안 늘 내부의 시각에서만 보아왔던 영상을 처음으로 공개하여 다른 관점들과 공유하면서 새로이 알게된 점들이 참 많았습니다. 설문을 통해 모아진 의견들은 추후 이어진 편집작업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대학원 졸업과 레지던시  — 상영회 이후 6월, 패트릭은 에딘버러 대학의 “Art Space and Nature” MFA 과정을 마치고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또한 졸업전시를 통해 알게된 Robert Callendar International Residency for Young Artists 프로그램의 내년도 아티스트로 선정되어 2015년 일본에서, 2016년 스코틀랜드에서 단기 레지던시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어진 편집 — 7~8월 여름 동안은 대전의 ‘대동작은집’이라는 도서관 겸 레지던시 공간에서 지내면서 마무리 편집을 이어갔습니다. 골목마다 매력이 가득한, 참 오래된 산동네 대동에 자리잡은 특별한 공간 ‘대동작은집‘은 작업에 집중하기에 아주 적합한 공간이었습니다. 완전히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던 몇몇 부분의 흐름을 조정하고, 번역이 자연스러운지 꼼꼼하게 검토하고, 각각 인물들의 특성이 더 확실히 드러나도록 세부 편집을 이어가는 한편, 음악 작업도 구체적인 방향을 잡아나갔습니다.

The "Small House" residency space in Daejeon

The “Small House” residency space in Daejeon

‘대동작은집’에서도 그동안 지내온 공간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주변 자연환경, 지역 커뮤니티와 어우러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패트릭은 영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친구들을 위해  매주 “대동영어마을” 를 열어 영어로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고, 저는 작은 오븐을 활용해 부지런히 빵을 구워서 친구들, 이웃들과 함께 나눴습니다. 종종 드나들며 단골이 된 대동슈퍼의 주인분들께서 직접 키우신 호박을 활용한 ‘호박 케이크‘는 특히 인기가 좋았습니다. 다소 어설픈 솜씨였지만 대전 시내에서 열린 ‘짜투리시장’ 벼룩시장에서 멍멍카페, 멍멍베이커리라는 이름으로 빵을 판매해서 다큐 제작비에 보태기도 했답니다.

Suhee's baking factory at the home

Suhee’s baking factory at the home

두달 동안의 대동 생활을 마무리하며, 저희가 보고 겪고 기록한 사진과 이야기들을 모아 ‘대동에서’라는 작은 책을 제작하여 ‘대동작은집’에 기증했습니다. 또한 대전에서 새로 알게 된 친구들을 대상으로 ‘작은 상영회‘라는 이름의 옥상 상영회를 열었고, 이어 서울의 ‘스페이스 노아’에서, 마지막으로 강원도 홍천의 최성현 선생님댁 마을에서 임시 상영회를 이어갔습니다.

특히 이 홍천의 상영회는 저희에게 무척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다큐에 대한 아무 계획도 없던 때, 짤막한 인터뷰를 위해 찾아뵈었던 3년 전의 그 첫 방문으로부터 이 모든 여정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직접 자연농을 하고 계신 농부분들, 직접 시작하려는 뜻을 품고 있는 예비 농부들, 일본 취재를 도와주었던 오하이오 부부 등 여러 특별한 손님들이 이 홍천 상영회를 찾아주었습니다. 상영회 시작 전, 다함께 논밭을 둘러보며 최성현 선생님의 지난 경험들에 대해 이야기 듣는 특별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At Seonghyun Choi's natural farm for a pre-screening tour in Hongcheon

At Seonghyun Choi’s natural farm for a pre-screening tour in Hongcheon

홍천에서의 ‘농장 상영회’를 제외하고, 연이은 상영회들을 거치며 각양각층의 다양한 관객들로부터 폭넓은 피드백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이 다큐가 향해야 할 ‘주요 관객층’을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고, 그동안 저희가 찾아내지 못했던 미흡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으며, 아울러 관객 여러분들의 여러 긍정적인 피드백들을 통해 용기와 확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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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Suhee at Namu farm in the San Francisco Bay Area

Suhee at Namu farm in the San Francisco Bay Area

사운드트랙 녹음 –다큐 작업을 진행하는 내내 ‘인복이 많다’는 말을 자주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사운드트랙 녹음은 모두 한국과 일본, 미국에 있는 저희 친구들의 도움으로 매우 수월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저의 단짝친구인 ‘봄눈별’의 아름다운 칼림바 연주, 역시 오랜 친구인 그룹 ‘신나는 섬’의 흥겹고 즐거운 음악, 그리고 2013년 여름 일본에서 가까이 지냈던  Youji Kohno and Ben Nakamura 의 전자음악이 일찍이 확정되었고, 11월에는 휴스턴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목관악기 그룹 Wind Sync 를 방문하여 함께 녹음작업을 진행하면서 사운드트랙 녹음이 마무리되었습니다.

Talking with Wind Sync about a scene before recording (Suhee Kang, FinalStraw.org | CC BY-SA)

Talking with Wind Sync about a scene before recording (Suhee Kang, FinalStraw.org | CC BY-SA)

마지막으로 열린 ‘임시 상영회’ — 위의 녹음 작업이 끝나고 바로 이어서, 산호세에서 여러 번에 걸쳐 작은 상영회를 열었습니다. Robin Lasser 교수님의 도움으로 산호세 주립대학의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한 번, 패트릭의 오랜 친구인 Josh Hires 의 도움으로 산호세 시내의 스튜디오에서 또 한번, 그리고 저희 다큐에 등장하는 자연농 농부이기도 한 Kristyn Leach 의 집에서 각계각층의 관객들을 대상으로 상영회를 열고 설문지를 통해 다채로운 의견들을 모았습니다. 피드백들을 훑어보니, ‘평온하고 희망찬, 행복한 다큐멘터리‘라는 평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저희가 이 다큐를 통해 전하고자 한 중요한 메시지가 관객분들께 잘 전해졌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One of the four rough cut screening crews in California.

One of the four rough cut screening crews in California.

이렇듯 2014년 한 해가 숨가쁘게 지나갔고, 어느덧 2015년 1월도 중반을 넘기고 있습니다. 드디어 완성을 코앞에 둔 필름은 최종 점검을 앞두고 있고, 차차 앞으로 이어질 배급 과정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감사하게도 계속해서 좋은 인연들을 새로이 만나고 이어지게 되어서, 오는 21~22일 열리는 ‘교육농축제’라는 뜻깊은 자리에 초대되어 다큐 ‘자연농’의 일부를 상영하고 저희 프로젝트에 대해 두루 나누게 되었습니다. (* 교육농축제 안내 페이지)

모쪼록, 지난 한 해 동안 저희 다큐 ‘자연농’에 보내주신 관심과 응원, 크고 작은 도움, 따뜻한 마음들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자원활동에 직접 참여해주신 자원활동가 여러분들과, 다양한 후원으로 큰 힘을 더해주신 후원자분들을 비롯하여, 저희 프로젝트를 힘껏 지지하고 관심을 보내주신 세계 곳곳의 많은 분들이 있었기에 이 오랜 작업을 꿋꿋하게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긴긴 제작과정을 마무리하고 결실을 맺게 될 2015년, 다큐 ‘자연농’의 발걸음을 꾸준히 지켜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015. 1

강수희 & Patrick Lydon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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